2009년 02월 15일
연(緣)
1.체인지 하는 부분 다듬기
2.에필로그 내용보충
[비츠]
“흑흑.”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디서 실수한 것일까?
강변에서 잔잔한 수면위에 떠오르는 초승달을 보며 그녀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초승달은 그녀에게 위로라도 하는 듯 미소를 짓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미소에 답할 수 없었다.
남자친구가 배신을 했다.
우연히 목격한 장면이었다. 그녀에게도 보여준 적 없던 맑은 미소와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 사랑스럽다는 말과 함께 자연스럽게 키스를 하는 그. 그 대상의 여성은 그녀의 죽마고우였다.
“그럴 거였으면 왜 나에게 그를 소개시켜 줬던 거야…….”
친구의 주선에 강제로 끌려 나간 그녀는 그와 만났고 사랑을 싹틔워 나갔다. 어색하지만 자신의 손을 잡으며 친구부터 시작하자던 그. 그렇게 시작된 인연이 5년이나 되었다. 서로 사랑했다. 그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현실은 참담 그 자체였다.
“난 왜 이렇게 불행한 거지? 왜 나만 이렇게 불행한 거야!”
“너 지금 불행하다고 말했니?”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풍선을 수십 개 들고 있는 여성이 서 있었다.
“그럼 이걸 줄게. 이 안에는 행복이 담겨 있어.”
멍하게 풍선을 받아든 그녀를 뒤로한 채 의문의 여성은 가던 길을 가기 시작했다. 갑자기 풍선이 터졌다. 하지만 풍선 안에서는 아무것도 떨어져 내리지 않았다.
“뭐지? 응?”
핸드폰에 걸려온 전화를 받자 끔찍한 소식이 흘러나왔다. 그녀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방금 운명했다는 것이다.
다시 걸려오는 전화. 자신의 집이 화재로 타버렸다고 한다.
다시 걸려오는 전화. 보험회사가 망해서 보험금을 하나도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었다.
그녀는 모든 것을 포기한 눈빛으로 강으로 뛰어들었다.
누군가가 다가왔다. 풍선을 건내 여성이었다. 그녀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읊조렸다.
“왜 그러는 거지? 이정도면 행복한 거 아니야? 나에겐 충분히 행복한 것인데 넌 그렇지 않은거야?”
하늘엔 울상을 짓고 있는 초승달이 걸려있었다.
[스피뉴]
정갈한 정리된 앞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칭 오박사라고 불리는 여성은 신경질적으로 커피를 들이켰다. 뜨겁지 않았기에 가능한 행동이었다. 한참 전에 커피를 타놓은 자신의 행동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의 조수인 이시우는 살짝 긴장했다. 신문을 손에 쥔 박사님의 표정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수.”
“네, 오박사님.”
지적인 무태 안경을 밀어올리며 그녀는 매서운 눈빛으로 조수를 쏘아 보았다.
“또 자살했어.”
“경기가 안좋으니가요. 세상도 흉흉하고.”
쨍! 하고 거칠게 컵받침에 컵을 내려놓는 오박사. 이시우는 질끈 눈을 감았다.
제길, 또 한창 설교가 시작되겠구나.
“난 지금 신문을 읽고 있어. 그러니 세상사 주저리 읊어 대지마. 이 활자들로 족하니까.”
오박사는 살짝, 그러나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그것은 긴 말을 할 때, 혹은 흥분 했을때 그녀의 버릇이었다.
“내 직업은 뭐지?”
“연(緣)술사입니다. 그것도 끊는 쪽의.”
사무적인, 그리고 반복된 기계적 어투로 이시우는 답했다. 그것은 그가 이 질문에 익숙해져 있다는 증거였다.
“자살하면 어떻게 되지?”
“그 사람의 연은 정리되지 못하고 돌아다녀 세상을 어지럽히지요.”
박사는 대답이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내용에는 만족스러워 하지 못했다.
[비츠]
“뭐, 반쪽짜리 대답이긴 하지만 칭찬해주지.”
“감사합니다.”
이 작자가 웬일로 칭찬이지? 하지만 이 생각은 이어진 오박사의 말에 깔끔히 묵살되었다.
“그럼 나머지 반쪽 대답을 들어볼까?”
“네?”
“설마 모른다는 건 아니겠지?
오박사의 눈초리가 매서워지는 것을 확인한 이시우는 황급히 기억의 창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이건 아니야. 이것도 아니고. 저거였던가? 아, 저쪽에 놓여있는 저거군.
겨우 찾아낸 기억의 문서를 찬찬히 낭독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자살한 사람의 연은 좋게 말하자면 한(恨), 나쁘게 말하자면 부정적인 기운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연의 주위로 그 기운이 퍼져나가 현세에도 영향을 미칩니다.”
자신의 대답에 만족해하며 여유로운 미소가 입가에 걸리려는 순간.
“그리고?”
“네?”미소대신 얼빠진 표정을 지어보였는지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펜을 책상위에 튕기기 시작했다. 아, 오늘은 일찍 퇴근하기 글렀구나. 눈물을 머금고 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당연하지. 알려 준 적이 없으니.”
“…….”
아, 이 빌어먹을 마귀할멈 같으니!
“그럼 내가 친절히 설명해주지. 만약 누군가가 이 연을 자신의 의지대로 다룰 수 있다면 어떻게 될 거라 생각하나?”
[스피뉴]
“교수님처럼 될 거라 생각합니다.”
“농담할 기분 아니야, 이시우.”
젠장, 누군 그런 기분인 줄 아나. 이시우는 한숨을 작게 내쉬며 고개를 꾸벅여 사죄를 표했다.
“저희처럼 연을 정리하는 목적이 아니라고 가정한다면… 말씀이시죠?”
시우는 숨을 들이켰다.
“제길, 막아야 겠네요. 세상이 노하기 전에.”
욕설을 내뱉는 시우를 오박사는 용서하기로 했다. 그만큼 보통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 하늘을 타고 흐르는 연의 흐름이 꼬여 역류하기라도 하면, 세상은 아주 개판이 되겠지.”
오박사는 힐끔 눈을 흘겨 자신의 왼쪽 서재에 꽂힌 먼지 가득한 책들ㅇ르 바라보았다. 거기에 새로 내용을 추가할 일이 생기는 것은 죽어도 막아야했다.
모든 연이 끊어진 이 사내 같은 존재가 늘어나는 것도.
오박사는 이를 가는 시우를 보고 눈을 가늘게 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책상 서랍을 거칠게 당겨 율법서 한권을 꺼내 시우에게 집어던졌다. 시우는 얼굴께로 날아드는 두꺼운 책을 간신히 받아들었다.
“저보고 해결하란 말씀인가요?”
오박사는 안경을 벗어 책상위에 내려놓았다. 같잖다는 듯이 웃으며.
“거물은 내가 처리 할 테니, 넌 어지러진 ‘연’이나 좀 정리해줘야겠어.”
[비츠]
“여기인가.”
성탄제가 다가옴에 따라 바람이 조금씩 차가워지는 것이 느껴진 시우는 옷깃을 단단히 여미며 몸을 움츠렸다. 연인들은 다가오는 성탄제의 기분에 휩쓸려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버텨가겠지만 그는 그저 추위에 덜덜 떠는 것만이 살 길이었다.
이 강변에 사람이 없기 때문일까? 추위가 한층 더 강하게 느껴졌다. 얼른 끝내고 돌아가자.
시우는 율법서(律法書)를 꺼내들어 대충 펼쳐들었다. 펼쳐진 페이지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은 백지였다. 백지인 걸 확인한 시우는 여자가 강으로 뛰어든 자리를 응시했다. 다행히도 경찰은 시신이 발견된 하류 쪽에 진을 치고 있었기에 작업하기가 수월했다.
“연이라 함은 이 세상과 이어진 실과도 같은 법이니,”
시우의 말이 이어짐에 따라 어둠속에서 무언가 꿈틀거리며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개를 치켜 든 뱀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난 그대들을 잉크로 하여 글을 쓰겠노라.”
그것의 정체는 실이었다. 바느질 할 때 쓰는 실이 아닌, 무언가 어둡고 암울한 느낌의 것들로 짜여진 영적인 성질의 실. 이 실들이 하나둘씩 펼쳐진 율법서의 백지로 모여들어 기이한 문양을 그려나가기 시작했다.
“그대들이 가진 한을 이곳에 풀어 씀으로서,”
어느덧 실들은 모두 책속에서 문자로 탈바꿈 하였고 시우는 그것을 확인하곤 책을 덮으며 읊조렸다.
“난 그대들의 넋을 기리며 안녕을 기도하노라.”
율법서를 가슴께로 가져오며 이시우는 눈을 감고 간결하게 기도를 올렸다.
“정리를 끝내고 돌아왔습니다, 교수님.”
전기난로 곁에 자리를 잡으며 시우는 품속에서 율법서를 꺼내 들어 오박사에게 건넸다.
그걸 펼쳐 본 오박사는 얼굴을 찌푸리더니 책을 덮었다.
“하나의 연이 아니야. 자신의 연에 타인의 연까지 덮어썼군.”
[스피뉴]
시우는 얼굴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장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말 자유자재가 맞네요, 끊고 연을 덮어씌우기까지 할 수 있다니.”
“미친게지.”
오박사는 율법서를 노려보았다.
“시우, 넌 왜 연을 함부로 다루는 자가 없는 줄 알지?”
“움직인 연은 움직인 당사자에게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죠.”
박사는 손가락을 튀겼다.
“그래. 연은 이어져 있으니까. 그런데 이 미친 녀석은 자신의 연이 망가지던 그리 상관 없나본데.”
율법서를 집어든 오박사는 의자에서 차분히 일어섰다.
“어디 가십니까?”
오박사는 쓰게 웃으며 자신의 여행가방을 들어올렸다.
“혼내줘야지. 그 망할 녀석을.”
묵직해 보이는 그 가방을 바라보며 시우는 신음했다. 박사가 무엇을 할지 알았기 때문이다.
“장송곡을 연주하실 생각인가요?”
박사는 고개를 횡으로 저었다.
“아니, 소멸의 세레나데를 연주할거야.”
하프를 뜯듯 연을 연주하는 연술사, 오서현은 율법서로 가득찬 가방의 무게를 느끼며 각오했다.
이번은 장난이 아니었다.
자신이 묻힐 각오를 하며 서현은 발걸음을 떼었다.
[비츠]
“있잖아, 누나. 풍선 하나만 주면 안 돼?”
해가 질 무렵, 아파트 단지의 한 놀이터. 그네에 앉아있는 여성에게 한 소년이 그녀가 들고 있는 풍선을 가리켰다. 그녀는 멍하니 소년을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불행한거니?”
“불행?”
5살 남짓한 아이에게는 좀 어려운 단어였나 보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좀 쉬운 단어로 반대의 의미를 담아 물었다.
“넌 지금 기쁘니?”
“응.”
소년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관심을 잃은 표정으로 무덤덤하게 말했다.
“그러면 줄 수 없어.”
“왜?”
그녀는 그냥 입을 다물고 시선을 돌려 소년을 무시했다. 소년은 몇 번 더 풍선을 달라고 졸랐지만 계속 상대해주지 않는 그녀에게 화가 났는지 흙을 뿌리곤 놀이터 밖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소년이 생각했던 것과는 다르게 그녀는 그저 무덤덤하게 흙을 털어낼 뿐이었다.
“뭐하는 거야, 도대체.”
그녀는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았다. 거기엔 오박사가 거대한 가방을 등에 짊어진 채 서 있었다.
“옆에 앉아도 될까?”
하지만 오박사는 그녀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옆 그네에 걸터앉았다.
“오랜만에 보는구나, 정시연.”
“그러네. 벌써 6년이나 지났나?”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어나가는 두 사람. 오박사는 가슴이 쓰라려 오는 것을 느꼈다. 이 비운의 친구를 자기 손으로 소멸시켜야 한다는 사실에.
이런 대화를 왜 나누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녀는 곧 그 질문을 구겨버렸다. 결전의 순간을 조금이라도 더 뒤로 미루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마고우로서 그녀의 6년을 알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스피뉴]
연을 조작해 다루려했던 자의 최후도.
오서현은 안경을 고쳐 썼다.
“너와 난 같은 연연(沿緣)파였지.”
시연은 서현 대신 풍선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손과 이어져있는, 절대 끊어지지 않는 실로 연결된 풍선을.
“단연(斷緣)파처럼 연을 독립적으로 따로 생각하는 멍청이들과 어울리긴 싫었으니까.”
“매정한데.”
서현은 전혀 그렇지 않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그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이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서, 너의 그 다중행복론(多衆幸福論)에 대한 연구가 널 이렇게 만들었단 말이지.”
시연은 대답하지 않았다. 단지 좀 더 세게, 풍선을 쥔 손을 말아 쥐었을 뿐이다.
“연은 이어져있으니까, 한 사람의 연을 조종해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면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는 너의 이론은 그럴싸했어.”
서현은 조롱하듯 웃었고 시연은 여전히 풍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은 공평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지만 말이지.”
그 말의 종결과 동시에 서현은 들고 있던 여행 가방을 강하게, 내려놓는 게 아니라 내려 찍었다. 그 충격으로 고리가 파손 돼 자연스럽게 열린 가방에서 율법서들이 튀어 올랐다. 허공에서 춤추는 책들을 보며 서연은 풍선을 놓았다.
연과 연이 격돌했다.
[비츠]
끝이 없었다. 아무리 율법서에 기록하고 막아내도 연은 끊임없이 빈틈을 노려왔다, 자신의 주위를 선회하며, 달려드는 연들을 튕겨내 주는 13권의 율법서들에게 계속 집중하며 오서현은 계속해서 입을 움직였다.
“그대를 향해 내미는 이 손길은 그대의 한을 어루만지기 위함이니,”
그녀의 언(言)에 이끌린 연들이 율법서들 사이로 흘러들어와 그녀가 들고 있는 거대한 율법서로 모여들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의 슬픔. 친구에게 배신당한 자의 분노. 자신의 모든 것을 약탈당한 자의 원한.
수많은 한들을 느끼며 서현은 흐려지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이를 꽉 물었다. 그 여파로 잇몸에 무리가 간 것일까? 한참 전부터 느껴지던 불쾌한 쇠 맛을 애써 무시하며 언을 이어갔다.
“최후의 만찬을 음미하며 그대들이 평안을 얻기를 기도하노라.”
몇 페이지가 넘어간 것일까? 절연파의 7장로와 13학자가 힘을 합해 만든 역대 최고의 율법서는 이미 절반정도 넘겨진 상태였다. 아무리 완벽하고 깔끔하게 연을 갈무리한다고 해도 6년이란 세월동안 모인 연을 모두 감당하기란 힘든 일일지도 몰랐다. 게다가 만약 가능하다고 해도 서현의 정신력이 그 때까지 버텨줄 수 있을지가 의문이었다,
아무리 연을 직접적으로 접하지는 않는다곤 하나 연연을 행하는 이상 그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연을 자신의 임의대로 움직인다는 것은 이미 그 연과 자신의 연이 이어진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만약 그녀가 절연을 전혀 모르는 상태였다면 이미 시연과 마찬가지로 연에 먹혀버렸을 것이다.
서현은 잠시 숨을 고르며 정신의 안정을 위해 방어에만 집중했다. 그런 그녀에게 뜻 모를 미소를 보내며 시연은 계속해서 연을 쏘아 보냈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행복을 받아들이는 건 어때?”
“뭐? 행복? 이것들이?”
슬픔. 원한. 원망. 분노. 울분. 좌절. 이런 것들이 행복이란 말인가?
“뭐,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의 근원이라고 해야겠지?”
“다중행복론의 이론이냐? 집어 쳐. 그건 실패한 논리야.”
“아니 실패하지 않았어.”
“뭐?”
시연은 의아해하는 서현에게 확신의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다중행복론은 성공했어. 그리고 완벽해.”
서현은 탄식했다. 어쩌다 저렇게 되었을까. 자신과 함께 연연파의 최고 인재로 떠올랐던 그녀가 어쩌다 이런 지경에 빠지게 된 것일까. 비통한 마음에 속으로 눈물을 흘리며 서현은 시연을 강하게 응시했다.
“다중행복론은 절대 성립할 수 없어. 넌 정말 모르고 있는 거냐? 너 자신이 이미 불행에 먹혀버린 것을?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있을 수 있는 거다. 넌 이걸 간과하고 있었어.”
“너야말로 그걸 알고 있으면서 왜 나와 대립하는 거지?”
“무슨 의미지?”
오히려 자신이 안쓰럽다는 시선을 받고 당황해하는 서현을 향해 시연은 당당하게, 그리고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답했다.
“불행이 있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수가 있어. 모두가 행복함만을 느끼게 되면 그것이 행복인지 알 수가 없어져. 그리고 결국 모두가 불행해져 버리고 말아.”
“잠깐, 설마?!”
경악에 찬 표정을 지어보이는 서현에게 맑은 미소를 보내는 시연.
“이해했구나. 그래. 연의 흐름을 역류시켜 모든 인간이 불행의 연을 짊어지게 만드는 거야.”
시연은 서현을 향해 쏘아 보내던 연들을 모두 물리고 몇 개의 연을 선택해 서현에게 보냈다. 서현은 그 연을 갈무리하며 연이 품고 있는 한을 느꼈다.
태어날 때부터 하반신 마비로 평생을 걷지 못한 자의 슬픔.
“난 다행히도 걸어다닐 수 있어. 이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넌 모르겠지.”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설명하며 시연은 또 다른 연을 서현에게 보냈다.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의 분노.
“난 다정한 부모님의 사랑을 받으며 자라왔어. 이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교통사고로 전신마비에 걸려 평생을 산 자의 좌절.
“나 이렇게 움직일 수 있어. 나의 위지로, 나의 마음대로, 내가 원할 때.”
연으로 통하는 대화는 계속 되었다. 수많은 한이 오가고 거기에서 수많은 행복이 생겨났다. 우리들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여기는 것들, 아무런 기쁨도 행복도 누리지 못하던 것들이 행복으로 탈바꿈 되어간 것이다.
“누구든지 행복해 질 수 있어.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어. 단지 사소한 일상만으로도, 식상한 생활만으로도. 세상을 바꾸지 않아도 인간은 행복해 질 수 있어. 이것이 내가 쌓아올린, 다중행복론의 핵심이야.”
“……”
서현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 타당했다. 너무나 완벽했다. 부조리하면서도 결코 바꿀 수 없는 세상이란 것을 변화시키지 않고도 인류는 행복을 손에 넣을 수 있다. 단지 약간만 역류시켜도 온 세상의 연이 역류하는 간단한 방법이 시연에게 있었다. 반박을 할 수가 없었다.
“나와 함께 해줘. 너의 친한 친구로서 이렇게 부탁할게.”
서현은 율법서들을 모두 거두어 들였다. 그런 그녀를 향해 시연은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연을 쏘아 보냈다.
“어서 와. 천국으로.”
서현은 자신을 향해 쏘아지는 연을 보며 눈을 감았다.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그려보며.
“오박사님. 너무 피로하신가 보군요. 내일 강의 펑크 안 내시려면 이만 주무십시오.”
오서현은 친숙한 목소리를 들으며 정신을 잃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느낀 것은 누군가가 자신을 감싸 안고 있다는 감각, 그리고 넓고 탄탄한 품속에서 느껴지는 안락함. 사소한 일상에서 느껴지는 행복감이었다.
시연의 연에 먹혀버릴 뻔한 오박사를 구해낸 이시우는 그녀를 편히 눕히고 시연을 돌아봤다. 시연은 그의 시선에 안타까움으로 되받아쳤다.
“서현은 나의 논리를 이해했어. 그런데 넌 이해하지 못한 거니?”
오서현을 몰래 따라온 이시우의 존재를 시연은 알고 있었다. 시우도 시연의 연을 어느 정도 제어하고 있는 것을 눈치 챈 것이었다. 서현은 13개의 율법서에 집중하느라 알아채지 못한 듯하지만.
“아니, 이해는 했어. 네가 무엇을 말하고 싶어 하는지. 불행이 있기에 행복이 있다. 맞는 말이지.”
“그런데 왜 나를 방해하는 거지?”
시우는 그녀를 동정하며 답했다.
“그건 맞는 말이지만 너의 다중행복론은 잘못 되었어. 모두가 불행의 연을 짊어지고 똑같은 행복을 얻는다. 하지만 이건 결국 똑같은 순환을 반복할 뿐이야. 모두가 행복을 누리는 세상에서 과연 그것은 진정한 행복일까?”
“……”
“처음에는 누구나 행복을 누리겠지. 하지만 결국 모두가 불행을 짊어진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거야.”
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의 논리가 자신을 옭아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혼란을 느끼며 그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그것이 말이 되어 입 밖으로 나오진 못했다.
“게다가 너에겐 그것이 행복일 수 있어. 하지만 과연 모든 사람이 불행의 연을 짊어진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과연 모든 사람에게 그것이 행복일 수 있을까?”
“그만… 그만… 그만하란 말이야!”
시연은 귀를 틀어막으며 절규했다. 아니야! 나의 논리는 명확해! 틀리지 않았어! 저 녀석의 말은 궤변이야!!!
연의 무리가 그를 향해 쇄도해갔다. 하지만 시우는 피하기는 커녕 오히려 한발 앞으로 전진했다. 한발, 한발.
“소용없어, 나에게는. 난 이 세상과의 모든 연이 끊어진 사람이거든.”
시우를 향해 돌진하던 연들이 하나같이 맥없이 튕겨져 나갔다. 아무리 뭉쳐서 굵어진 연이라도, 아무리 매섭게 돌진하는 연이라도, 시우의 연과는 그 어느 것 하나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살아있는 율법서이기에.
사태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한 것을 느낀 시연은 효과가 없는 것을 알면서도 시우에게 더욱 더 강하게 연들을 흩뿌렸다.
“오지 마! 다가오지 마! 오지 말란 말이야!”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의 불행을 짊어지고 있어. 그렇기에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행복을 누릴 수 있지. 쉴 틈 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 느긋하게 마시는 한 잔의 커피. 이것만으로도 빠르게 돌아가는 일상에 찌든 자들에겐 행복이 될 수 있어.”시우는 눈 한번 깜빡이지 않으며 시연과의 거리를 좁혀갔다. 거리가 좁아지면서 연이 휘몰아치는 강도가 더해갔지만 그는 그 너머에 있는 시연을 강하게 응시할 뿐이었다.
“그대들이 품은 한(恨)을 나는 알고 있기에,”
시우의 입에서 언(言)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이전의 언과는 무언가가 달랐다. 강도가 다른 위압감이 느껴지는 언이었다.
“그대들을 대신하여 눈물을 흘릴 수 있기에,”
언이 이어질수록 시우의 주위를 맴돌던 연들이 시우를 향해 급속도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오서현도 어찌하지 못하던 그 연들을 말이다.
“이 한 몸 바쳐 그대들 앞에 호소하노라.”
시우는 걸음을 멈췄다. 그의 앞에는 손으로 귀를 막고 주저앉은 시연이 있었다.
“풀 곳 없는 그대들의 한을 내가 짊어질 테니,”
시우는 무릎을 꿇어 시연과 눈높이를 맞추었다.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그는 눈을 감았다.
“천명에 따라 연강(緣江)에 몸을 맡겨 유유자적 흘러가길 기도하노라.”
힘없이 쓰러지는 시연을 안아들며 시우는 그녀를 위해 기도했다. 그녀의 연은 불행의 연과 너무 동화되어 있었기에 그로서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기도를 마친 시우는 편히 잠든 그녀의 얼굴을 보며 씁쓸히 중얼거렸다.
“저에게 그것은 단순한 불행덩어리였습니다…….”
[스피뉴]
병원의 흰색은 청결과 위생을 상징한다고 하지만, 오히려 환자에겐 병폐가 짙어 보일 뿐이다. 그래서 하늘거리는 흰색차일을 획 쳐버리며 오서현, 아니 오박사는 다시 느긋하게 누웠다.
“괜찮으세요?”
걱정이 가득한 시우의 말에 박사는 코웃음으로 답했다.
“연이 불행으로 꼬여서 내 속에 있던 병을 건드렸을 뿐이야.”
“심장병이 있다는 소린 처음 듣는데요.”
베게 위에 팔을 얹고 베며 박사는 웃었다.
“심장병은 모두에게 발병 가능성이 있으니까.”
“전 멀쩡한데요.”
“넌 불행한 게 아니라 완전 연이 없잖아. 이 멍청이.”
시연의 연을 뒤집어썼던 시우는 그 말에 소소하게 웃었다. 벌써 시연의 연이 깨끗하게 지워진 시우를 바라보며 오박사는 창 너머를 바라보았다.
밝았다, 하늘은. 맑았다, 연의 강물은.
“그녀는 나쁘지 않았어요.”
그렇게 말하는 시우의 뒤끝은 쓰디썼다.
“인연의 앞에서, 선과 악 따윈 다 부질없지.”
오박사는 손을 들어올렸다. 마치 하늘의 연을 잡으려는 것처럼.
“그러니 공평한 거야. 진정한 공평함은,”
하지만 잡히지 않았다. 당연했다.
“아무리 발버둥 쳐도, 울고불고 날뛰어도 변하지 않는 거니까.”
시우는 말하지 않았다. 인정하기엔 시연은 너무나 비참했으니까. 그래서 박사는 덧붙였다.
“그게 연이야.”
# by | 2009/02/15 15:49 | 릴레이 소설[미퇴고]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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